"괜찮아요, 화가 아저씨. 좋은 경험이 될꺼에요."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에서 본 <방랑기>에서 후미코가 경찰들에게 끌려가면서 하던 말. 나의 비플랜이기도 한 말.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꼬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땐 저 말을 생각한다. 그 영화는 재미있었다. 그런 식의 연기와 컷팅은 말 그대로 'cut the crap' 같은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영화의 오프닝이란 좀 그런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와 과거를 함축하는 몇 컷짜리 서곡 같은 시퀀스. 그리고 나서 마치 무대를 여는 징을 치듯이 부왕 하고 화면 가득히 떠버리는 제목. 물론 지금 기준으로 빈티지랄까 그런 양식적 쾌감이 있는 거지만 좋은 오프닝은 언제나 영화의 내용과 인물들과 풍이 어떤 것일지를 한 두 컷으로 면상에 던지면서 관객들의 호흡을 맞춰주는, 이상적인 준비운동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웰컴 투 디스 월드' 시퀀스랄까. 몰라 난 그런게 화끈하게 있어주는 게 좋더라. 화끈하게 지루한 오프닝이 있다면 지루함이 그 영화의 미학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쳐주고 들어가게 된다. 오프닝은 이러이러할 것처럼 시작해 놨는데 영화는 딴판이면 김이 빠진다. 어쨌든 "빠가야로!" 한 번 외쳐주고 뒤돌아 뛰어가는 후미코의 풀샷 위로 떠오르던 그 방.랑.기. 글자들은 잊지 못할꺼야. 응응.
-
인물 하나는 유토피아에서 왔다. 말 그대로 유토피아다. 그는 개념에 가까운 순진함과 무지와 한가로움을 간직한 채 시궁창에 나타날 건데, 시궁창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순도 백퍼센트의 호기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기타등등 기타등등. 메모할 수가 없다.
-
물론 저건 희극이기 때문에 인물의 순진함은 유지될 것이다. 모든 희극이 그렇듯이 그 순진함과 현실의 간극이 실소를 자아내야 한다. 실소를 자아내는 건 눈물을 자아내는 것보다 천만배쯤 어려운 것 같다. 망해버리면 놀림당하기도 딱 좋고. 하지만 난 그 방식이 좋아 언제나 도전을 해보고 싶다. 사실 가장 염세적인 자들이 가장 실없는 농담들은 한다. 그 농담들은 씁쓸하다. 염세의 깊이에 필사적으로 저항이라도 하듯. 아무 데에도 아름다운 것이 없고 우습고 추한 것들만 가득하다는 것처럼.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다소 진지하게, 숭고하게 생각해 보면 눈물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운 것은 나이브함 뿐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그 바보같은 믿음, 기대, 희망 같은 것들. 그리고 그 나이브함이 무너지는 각성의 순간이 가장 슬프다. 맹목적으로 따뜻하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그 순간 말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사회에나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 전과 후가 같을 수 없는 경험들. 억장이 무너지는 그 무시무시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서 시간 안에 가두어 버리고 싶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건 그 욕망 때문인 것 같다. 마치 포르말린에 잘 보존된 생물의 살갗의 미세한 결처럼, 영화의 시간 안에 잘라 담은 그 순간 순간들의 결을 고스란히 소유하고 싶은 거다. 말이 웃기지만 순간을 영생시키고 싶은 거랄 수도 있겠다. 시간이란 달리 내버려두면 흘러가버려서 영원히 다시 마주할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
그런데 뭐... 싶은 건 싶은거고 잘 만들어야 말이지.
-
사람이든 국가든 연인이든 예술가든 무엇이든, 하는 말과 보여주는 행동이 다를 때 가장 존경을 못 받는다. 별로인 말도 있고 별로인 행동들도 있지만 그건 단순히 좋다 싫다와 연관이 되는 거지, 실망이나 경멸과 연관이 되는 건 아니다. 실망이나 경멸의 상관관계는 말 그 자체나 행동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의 간극에 있다.
Posted by NKS VS. NKS
TRACKBACK http://worstfriends.tistory.com/trackback/893